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안 (문단 편집) == 여담 == * 그가 태어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여전히 미하일 안을 유명인사로써 기리고 있다. 애칭 '''[[미샤]]'''를 본딴 도로명도 있을 정도로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으며 특히 그가 전성기를 누렸던 [[파흐타코르 타슈켄트]] 구단과 팬은 여전히 그의 기일을 추모하고 있다. 후에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역임한 삼벨 바바얀 당시 파흐타코르 구단 부회장이 직접 그의 묘지에 가서 묘비를 껴안고 우는 사진도 있을 정도다. *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배출한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세 명''' 중 한 명이다. 그 세 명중 고려인, 동양계 선수는 미하일 안이 유일했다. * 1989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구단이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평가전을 위해 입국하면서 [[소비에트 톱 리그]]의 창설을 주도한 전설적인 축구인 '''니콜라이 스타로스틴''' 당시 구단 회장이 '''“미하일 안의 나라에 와보고 싶었다. 늦게라도 그의 나라에 올 수 있게 돼 기쁘다.”'''라고 입국 인터뷰를 한 것이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9년만 해도 적성국이었던 소련에 대한 이해도나 연구가 매우 미진했던 상황에서 한국계 선수가 소련 축구계에서 두각을 나타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던 한국인들은 당연히 미하일 안이 대체 누구냐는 반응을 보였고 자연스럽게 그 인터뷰 내용은 국내에서 묻혀버렸다. 이후 수십년이 지나서야 미하일 안에 대한 재조명이 되기 시작하며 다시금 발굴되었다. * 2020년 10월 [[한국계 미국인]] 영화감독인 브라이언 송이 미하일 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미샤'''를 제작했다. 그는 다큐 제작을 발표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아직 한국에서 미샤의 삶은 더 자세히 조명한 작품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이 놀랍긴 하다. 미샤는 누군가에게 영감이 될 수 있는 스토리를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샤의 스토리는 단순한 스포츠 스토리가 아니라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휴먼 스토리다.'''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 생전에도 비행기에 대한 공포증이 꽤나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부인인 앨라 세르게에프나의 증언에 따르면 미하일 안은 과거 미국 LA와 샌프란시스코 원정경기를 위한 미국행 비행기에서 심한 난기류를 만나 불안정한 비행을 경험한 뒤 극심한 비행 공포증에 괴로워했다고 하며 이후 국내 리그 장거리 원정을 위해 벨라루스, 조지아 등을 갈 때도[* 두 국가는 당시 [[소련]]으로 한 나라에 속했다.] 매우 불안해하며 동행했다고 한다. * 우크라이나인으로 70년대 소련 최고의 축구선수로 불리던 [[올레흐 블로힌]]과 자주 연관되어 언급되었다. 은근한 라이벌 관계였다고 하며 포지션은 달랐지만 두 선수 모두 소련의 주류였던 러시아계가 아니었고, 블로힌은 서양계 소수민족 팬들을, 미하일 안은 동양계 소수민족 팬들을 대변하는 선수로 둘 다 인기가 많았다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